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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계절 · 14장

1부 · 유년기 · 3권 · 아무도 모르는 언어

14장

타인의 계절 · 서용준

그날 저녁, 수진은 혜원과 소이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수진은 낡은 앨범을 꺼내, 순덕이 살아온 세월을 보여줬다. 전쟁 이후 홀로 남쪽에 정착해 고생스럽게 가정을 꾸리고 자식들을 키워낸 이야기였다. 그러면서도 평생 오빠를 그리워하며, 명절이 되면 늘 북쪽 하늘을 바라보곤 했다고 했다.

"할머니는 마지막까지, 언젠가 오빠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으셨어요." 수진이 사진 한 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할머니 마지막 사진이에요."

사진 속 순덕은 백발의 노인이었다.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빛 어딘가에는 오랜 그리움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소이는 그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문득 말했다.

"할아버지가 그린 동생 얼굴이랑 똑같아요. 어릴 때 얼굴이긴 하지만."

수진은 그 소리에 다시 눈물을 흘렸다. "그럼 정말 우리 할머니가 맞나 보네요."

혜원은 그날 대화에서, 순덕이 생전에 오빠와의 이별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다는 걸 알게 됐다. 피난길에 갑자기 놓친 손, 그리고 다시는 찾지 못한 그 손. 그 기억은 순덕의 평생을 따라다녔다고 했다.

"할머니가 그러셨어요." 수진이 말했다. "그날, 오빠가 손을 놓친 게 아니라, 자기가 사람들 틈에 밀려서 놓쳤다고. 그게 평생 죄책감이었대요."

혜원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저릿했다. 덕수 할아버지도, 순덕 할머니도, 각자 자신이 놓친 손에 대해 평생 자책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오늘 밤에," 소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할아버지한테 그것도 전해줘야겠어요. 순덕 할머니 잘못이 아니었다고."

혜원은 딸의 그 배려심에 다시 한번 마음이 뭉클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