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로 돌아온 날, 소이는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우리 딸, 얼굴이 훨씬 야무져졌네." 준영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진짜? 나 살 좀 빠진 것 같은데." 소이가 웃으며 대답했다.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는 거야?" 혜원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응, 이제 웬만한 건 다 혼자 해 먹어. 엄마가 알려준 계란찜 레시피, 완전 내 필살기 됐어."
가족들은 그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오랜만에 온 집안이 소이의 웃음소리로 채워졌다.
저녁 식사 후, 소이는 오랜만에 자기 방에 들어가 봤다. 대학 진학과 함께 비워둔 방이었지만, 혜원은 여전히 깨끗하게 정리해두고 있었다. 창가에는 지금까지 만나온 손님들을 기리는 아홉 개의 화분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소이는 그 화분들을 하나씩 손으로 쓸어봤다. 순임 할머니, 유준, 덕수 할아버지... 지완이까지. 각자의 계절을 남기고 간 존재들이 여전히 이 방을 지키고 있었다.
"오랜만이다, 다들." 소이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밤이 깊어지자, 소이는 오랜만에 어린 시절 자기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편지를 든 손님이 다시 찾아왔지만, 이번에도 뚜렷한 사연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저 조용히 곁을 지키다 물러가는 정도였다.
다음 날 아침, 소이는 개운한 얼굴로 눈을 떴다. 오랜만에 느끼는 익숙한 집의 냄새, 익숙한 가족의 목소리. 서울에서의 낯섦과는 또 다른, 편안한 안정감이 온몸을 감쌌다.
아침 식탁에서, 혜원은 오랜만에 수첩을 꺼내 보여줬다. "요즘도 계속 쓰고 있어. 네가 없어도, 이 집엔 여전히 손님들 이야기가 남아 있으니까."
소이는 그 수첩을 넘겨보며 웃었다. "엄마, 이거 나중에 나 다 물려주는 거지?"
"그럼, 당연하지. 언젠가 네가 이 모든 이야기를 정리할 사람이 될 거야." 혜원이 웃으며 대답했다.
소이는 그 얘기를 듣자 묘한 책임감과 설렘을 동시에 느꼈다. 언젠가 자신도, 혜원처럼 이 모든 계절들을 기록하고 정리하는 사람이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