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버실은 언제나 조금 춥다.
에어컨이 쉬지 않고 돌아가는 탓에, 여름에도 긴팔을 입어야 했다. 경호는 그 사실이 처음엔 이상하게 느껴졌다. 바깥은 찜통인데, 이 방 안에서는 겨울이 산다는 게. 랙에 꽂힌 스위치들의 초록 불빛이 일정한 간격으로 깜빡였다. 그 리듬은 심장 박동 같기도 했고, 아니면 그냥 기계가 숨 쉬는 소리 같기도 했다.
삼촌이 여기 넣어준 지 넉 달째였다.
"전기과 나왔으면 이런 데서 케이블 정리하는 것도 금방 배울 거다." 삼촌은 그렇게 말했었다. 그건 사실 삼촌도 잘 몰라서 한 말이었다. 경호가 전기과를 나왔다는 건 서류상의 일이었을 뿐, 실제로는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중학교 2학년 즈음부터 경호는 공부라는 걸 놓아버렸다. 정확히는, 뭘 놓았는지도 모른 채 그냥 멈춰 있었다. 수업 시간엔 앉아만 있었고, 시험지엔 이름만 적어 냈다. 고등학교는 성적과 상관없이 갈 수 있는 곳으로 갔고, 전기과에 배정된 것도 경호의 선택이 아니었다. 3년 내내 실습실 구석에 앉아 남이 하는 걸 구경만 했다. 회로도를 볼 줄
몰랐고, 멀티미터 하나 제대로 못 잡았다. 졸업장은 나왔지만, 그 안에 든 건 아무것도 없었다.
입사하고 넉 달, 경호는 회사에서 제일 쉬운 일도 버거워하는 사람이었다. 케이블 색깔을 구분해서 정리하라는 지시조차 몇 번을 되물어야 했다. 매뉴얼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됐다. 사수는 답답해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경호에게는 청소나 커피 심부름, 박스 나르는 일만 시켰다. 경호도 그게 편했다. 뭘 시도했다가 또 못하는 걸 확인하느니,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나았다.
그런데 오늘, 뭔가 조금 달랐다.
야간 점검 당번이었다. 원래는 사수가 할 일이었는데, 급한 일이 생겨 대신 경호에게 떠넘기고 갔다."그냥 순서대로 확인만 하면 돼, 매뉴얼 보면서." 못 미더운 얼굴로 그렇게 말하고 나갔다. 넓은 사무실에 남은 사람은 경호 하나였다. 다들 퇴근한 사무실은 이상하게 넓어 보였고, 모니터 몇 대만 켜진 채로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경호는 랙 앞에 쭈그려 앉아 매뉴얼을 폈다. 평소 같으면 세 줄도 못 읽고 덮었을 텐데, 오늘은 아무도 지켜보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첫 줄부터 천천히 읽어봤다. 이 케이블은 여기서 저기로, 저 선은 다시 저 위로. 하나씩,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처음엔 틀렸다. 두 번째도 틀렸다. 그런데 세 번째 즈음, 뭔가 걸리는 게 있었다.
색깔이 다른 이유가 있었다. 순서가 정해진 이유가 있었다. 그건 외우는 게 아니라, 그냥 보이는 거였다.
경호는 손을 멈추고, 자기 손끝을 내려다봤다. 낯설었다. 스물네 해를 살면서, 뭔가를 이렇게 끝까지 이해해본 적이 있었나.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았다.
정리를 다 끝내고 나서, 경호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서버실의 팬 소리가 낮게 웅웅거렸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집에서는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종류의 고요함이었다.
집.
그 단어를 떠올리자마자 경호는 픽 웃었다. 집이라고 부르기엔, 그 집은 너무 오래 조용했다. 아버지는 퇴근하면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고, 형은 형대로 자기 방에서 뭘 하는지 몰랐다. 세 사람이 한 지붕 아래 살면서도 저녁을 같이 먹는 날이 한 달에 며칠 되지 않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들 그렇게 사는 게 편하다는 듯이 지냈다.
엄마가 있었을 땐 안 그랬다.
경호는 그 생각을 하다가 스스로 멈췄다. 요즘 들어 이상하게 그 생각이 자주 찾아왔다. 예전엔 잘 떠오르지도 않던 얼굴이, 최근엔 아무 이유 없이 불쑥불쑥 나타났다. 부엌에서 뭔가를 볶던 뒷모습이라든가, 된장국 냄새라든가. 고 2때 일이니 벌써 육 년도 더 됐는데, 왜 지금 와서.
핸드폰이 울렸다. 삼촌이었다.
"어, 삼촌."
"뭐 해, 아직 회사냐?"
"당직이에요, 오늘."
"고생하네." 삼촌은 잠깐 말이 없다가 물었다."할 만하냐, 일은?"
경호는 방금 전 케이블을 정리하던 손끝의 감각을 다시 떠올렸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이렇게 대답했다.
"재밌는 것 같아요. 오늘은."
전화기 너머에서 삼촌이 짧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그래? 그럼 됐다." 별다른 말은 없었다. 삼촌은 원래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짧은 웃음이, 경호는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
전화를 끊고 나서 경호는 다시 랙을 바라봤다. 초록 불빛들이 여전히 깜빡이고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뭘 하고 싶은지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구나. 그냥 주어진 대로, 흘러가는 대로 살아왔구나. 전공도, 취업도, 심지어 집에서 조용히 지내는 것도, 다 누가 정해준 대로였다.
그런데 오늘, 아주 잠깐이지만, 처음으로 스스로 뭔가를 선택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케이블 하나를 어디로 정리할지, 그건 사소하지만 온전히 경호 자신의 판단이었다. 그리고 그 사소한 판단이 맞아떨어졌을 때, 몸 안에서 뭔가가 조용히 켜지는 느낌이 있었다.
경호는 핸드폰을 열어 부동산 앱을 켰다. 딱히 계획하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냥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였다. 검색창에 동네 이름을 적어넣고, 월세 낮은 순으로 정렬했다. 반지하 방들이 화면 위로 줄줄이 떠올랐다. 낡고, 작고, 볕도 잘 안 들 것 같은 방들.
이상하게, 그중 하나를 보는 순간 마음이 갔다. 작은 창문 하나, 그 아래 붙어 있는 좁은 싱크대. 사진 속 부엌은 초라했다. 그런데도 경호는 그 사진을 한참 들여다봤다.
서버실의 팬 소리가 계속 웅웅거렸다. 창밖은 이미 깜깜했다. 경호는 그 방 사진을 캡처해두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남은 점검을 이어갔다. 손끝은 여전히, 아까처럼 가벼웠다.
사수의 이름은 정재훈이었다.
서른다섯, 회사에서 십 년 넘게 일한 사람이었다. 처음 경호가 배치됐을 때, 재훈은 그를 가르치려 몇 번 애를 썼다. 케이블 색상 규칙을 설명하고, 랙 다이어그램 읽는 법을 알려주고, 간단한 점검 순서를 종이에 적어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경호는 그 종이를 몇 번이나 잃어버렸고, 같은 질문을 며칠 뒤에 또 물었다. 재훈은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설명을 그만뒀다.
" 그 냥 이 거 나 좀 치 워 줘." 재 훈 은 경 호 에 게 걸 레 를 쥐여주며 그렇게 말했다. 경호도 그게 편했다. 뭘 해보려다 또 못하는 걸 확인시켜주느니, 그냥 시키는 심부름이나 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재훈은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점심시간에도 혼자 먹는 날이 많았고, 회식 자리에서도 구석에 앉아 술만 마셨다. 후배들 사이에서는"까칠하다"는 말이 돌았지만, 정작 경호에게 크게 화를 낸 적은 없었다. 그냥 무심했다. 기대를 접은 사람 특유의 무심함이었다.
경호가 야간 점검을 떠맡던 그날, 재훈은 급한 일이 있어 나가면서도 뒤를 몇 번 돌아봤다. 걱정이 됐던 모양이다. 다음 날 출근했을 때, 재훈은 경호가 정리해놓은 랙을 한참 들여다봤다. 말없이. 그러다 딱 한마디 했다.
"이거 네가 했냐?"
"네."
재훈은 대답 없이 랙을 다시 살폈다. 배선이 매뉴얼 순서와 정확히 일치했다.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는 뭔가 말하려다 말고, 그냥 고개만 한 번 끄덕이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날 이후로 재훈은 조금씩 달라졌다. 여전히 말은 없었지만, 이제는 경호에게 걸레 대신 다른 걸 건넸다. 매뉴얼, 점검표, 그리고 가끔은 자기가 직접 정리한 메모 같은 것들. 경호는 그걸 하나씩 받아 들며, 뭔가 다시 시작되고 있다는 걸 느꼈다.
한번은 야근이 길어진 날, 재훈이 불쑥 캔커피를 하나 건넸다.
"고맙습니다."
"뭘." 재훈은 자기 캔을 따며 창밖을 봤다. 한참 말이 없다가, 문득 이렇게 말했다."나도 예전에 잘하는 거 하나도 없었어."
경호는 그 말에 놀라서 재훈을 쳐다봤다. 재훈은 계속 창밖을 보고 있었다.
" 고등학교 때 사고 좀 쳤 거든. 자퇴할 뻔했다가 겨 우 졸업했어. 그때 담임이 나 완전히 포기했었어. 수업 시간에 나 없는 사람 취급했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몰라. 그냥 어느 순간 뭐 하나가 맞아떨어지더라고. 나는 그게 이 일이었어." 재훈은 캔을 한 모금 마셨다."너도 그런 거 하나 찾은 것 같던데. 그 날, 랙 정리한 거 보고."
경호는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서 캔만 만지 작거렸다. 재훈은 별로 대답을 기다리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냥 창밖을 보다가,"먼저 들어가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날 이후로 경호는 재훈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됐다. 무심해 보였던 그 태도가, 사실은 한때 자기 자신에게 가장 무심했던 사람의 방식이었다는 걸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집에 돌아온 건 자정이 넘어서였다.
현관문을 열자 익숙한 어둠이 맞았다. 거실엔 불이 꺼져 있었고, 아버지 방문 밑으로도, 형 방문 밑으로도 빛이 새어 나오지 않았다. 경호는 발소리를 죽이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깨어 있어도, 누구도 나와보지 않을 테니까.
씻지도 않고 침대에 누웠다. 몸은 피곤한데 머릿속은 이상하게 또렷했다. 오늘 서버실에서의 그 감각이 계속 손끝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뭔가가 맞아떨어지던 순간. 색깔이, 순서가, 이유가 있다는 걸 알아챈 순간. 경호는 그 감각을 붙잡고 있으려 애쓰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
꿈이라는 걸 알았다. 그런데도 이상할 게 없었다.
부엌이었다. 낯익은 부엌. 지금 집의 부엌은 아니었다. 더 좁고, 더 오래된, 예전에 살던 그 집의 부엌이었다. 형광등이 노랗게 낡아 있었고, 싱크대 위엔 늘 그 자리에 있던 나무 도마가 놓여 있었다.
엄마가 가스레인지 앞에 서 있었다.
뒷모습이었다. 앞치마 끈이 허리 뒤에서 나비 모양으로 묶여 있었다. 뭔가를 볶고 있었는데, 기름 튀는 소리와 마늘 냄새가 났다. 꿈속에서도 냄새가 난다는 게 신기했지만, 경호는 그걸 이상하게 여길 새도 없었다. 그냥 그 자리에, 식탁 앞에 앉아 있었다.
"경호야."
엄마가 돌아보지 않은 채 불렀다. 목소리는 정확히 기억하던 그대로였다. 아니, 사실 경호는 그 목소리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는지 자신이 없었다. 육 년이나 지났으니까. 그런데 꿈속에서 듣는 순간, 이게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
경호는 대답했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손 씻고 앉아."
경호는 손을 내려다봤다. 깨끗했다. 그런데도 몸이 저절로 일어나 싱크대로 가서 손을 씻었다. 물이 따뜻했다. 자리로 돌아와 앉으니, 엄마가 뒤돌아서 접시를 내려놓았다.
계란말이였다. 조금 탄 자국이 있는, 늘 그렇게 부치던 계란말이.
"먹어."
엄마는 그 말만 하고, 다시 가스레인지 쪽으로 돌아섰다.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경호는 젓가락을 들었다. 뜨거웠다. 진짜 뜨거웠다. 씹으니 짭짤하고, 조금은 달았다. 정확히 기억하던 그 맛이었다.
"소금 좀 더 넣을까."
엄마가 물었다. 경호는 아니라고, 딱 좋다고 대답하려 했는데, 목이 메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저었다. 엄마는 그걸 본 것도 아닌데"그래" 하고 대답했다.
그게 다였다. 별다른 대화도, 특별한 장면도 없었다. 그냥 부엌에 둘이 있었고, 계란말이가 있었고, 기름 냄새가 났다.
눈을 떴을 때, 경호는 자기 방 천장을 보고 있었다. 창밖은 아직 어두웠다. 시계를 보니 새벽 네 시 반이었다.
입안에 짭짤한 맛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물론 그럴 리 없었다. 경호는 침대에 누운 채로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 나오지 않았다. 대신 뭔가 다른 감정이 자리했다. 슬프다기보다는, 그냥 아직 거기 있다는 느낌. 엄마가, 어딘가에는, 아직.